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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走客), 버몬트 마라톤을 달리다.

 

마라톤에는 무지개를 잡으러 달려가는 소년의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마라톤에는 토끼몰이를 하는 개구쟁이들의 커다란 꿈이 있다.

나는 달리면서 소년이 되어간다. 고개 위에서 한 바퀴 뒹굴 때마다 3 년씩 젊어졌다는 옛이야기처럼 한 번의 마라톤을 뛸 때마다 3 년은 젊어지는 느낌이다.

마라톤을 뛸 때 시간과 공간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과 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이번 마라톤 경기 중반에 체력이 고갈되어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어졌을 때 나는 마치 우주에서 유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지구가 있는 태양계의 시간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연습을 하지 않고 무리하게 많은 대회에 출전하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2011 버몬트 마라톤 004.jpg

산이 많고 험준한 미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버몬트의 농촌의 풍경은 거실에 걸린 유화처럼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급한 것은 오로지 산세일 뿐, 계절의 변화일 뿐,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나 말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한가했다. 이곳의 시간은 맨하탄의 시간과는 틀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버몬트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푸른 산이라는 뜻의 Vert Mont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치 북유럽에서 보내온 그림엽서처럼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전나무 숲과 호수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여행지 50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주도는 몬트 필리어이고 동쪽으로는 코네티컷 강을 사이에 두고 뉴 햄프셔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Lake Champlain을 사이에 두고 뉴욕주와 접하고, 북쪽은 캐나다의 퀘백주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메사추세츄와 접하는 인구 60 만여 명의 주이다.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Burlington은 버몬트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 미국 50 개 주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가장 인구가 작은 (4만 명) 도시라고 한다.

겨울이면 스트랜튼, 마운트 스노우, 킬링톤등 스키를 타러 왔던 그곳이다. 일년 중 약 6 개월은 눈에 덮여있는 이곳은 규모나 설경의 아름다움에 올 때마다 넋을 잃곤 한다. 겨울이면 또 낚시꾼, 사냥꾼들이 많이 찾는다. 버몬트는 산세가 험하지만 땅이 비옥해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낙농제품과 메이플 시럽이 특히 유명한데, Ben & Jerrys 아이스크림 본사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메이플 시럽은 단풍나무의 수액을 체취 하여 정제하는데 인디언 원주민들이 유럽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에게 전수한 것이라 한다.

 2011 버몬트 마라톤 026.jpg

Lake Champlain은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라고 한다. 뉴욕에서 87 번 하이웨이를 타고 5 시간 정도 올라가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쫓아가니 길은 없고 페리 선착장이 나온다. 큰비가 왔는지 호수는 넘쳐서 낮은 별장들이 물에 잠겨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구름이 약간 끼어 있고 선선하여 달리기에 좋다고 생각했는데 출발 신호가 울리기 직전 제법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페이스 메이커가 시간 푯말을 들고 뛰는 게 다른 대회에서는 볼 수 없던 특이한 장면이었다. 3 시간 40 분 푯말이 저 앞에 보이고 네가 서 있는 바로 앞에는 4 시간 푯말이 보인다. 연습은 못했어도 당연히 목표는 3 시간 30 분이므로 부지런히 앞으로 나섰다. 연습은 못한 대신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므로 전반 페이스는 아주 좋았다. 내리는 비가 몸의 체온도 적당하게 식혀주었다.

아마 이 마라톤 대회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행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6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며, 도시 인구 4만여 명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도에서 응원을 해준다. 지나는 골목마다 연주 팀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연주를 해준다.
2011 버몬트 마라톤 006.jpg

14 마일 까지는 무아의 지경에 빠져 마라톤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젖어 뛰었는데, 조금 전부터 비가 그치면서 해가 나더니 습도가 올라간다. 체온도 올라가면서 그 열이 얼굴로 쏠리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몸의 에너지가 소멸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언덕길이 시작되었다. 그 언덕길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골고다의 언덕길만큼 괴로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고행의 언덕길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처참한 심정으로 올라갈 때 옆에서 심장을 찢을 듯 울리는 일본 북 연주단의 북소리가 정신을 바싹 들게 한다. 대학생들인 모양인데 얼핏 보아 모두 백인들 같았다. 일본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여 운영하는 팀이겠지 생각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경쟁심이 발동한다.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후의 12 마일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고,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 가슴에 단 태극마크를 알아보고 Lets go Korean runner.라고 응원해 주는 소리가 그냥 덧없이 날아가버린다.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걷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쑥스럽고 창피스러웠다. 4 시간37 분의 생애 최고의 길고 험난한 여행은 억지로 끝이 났다. 4 시간 37 분이 내게는 삼천갑자 동방삭의 생애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마라톤의 시간과 공간은 확실히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과 공간과는 많이 다르다. 연습을 충분히 했을 때의 마라톤의 시간과 그렇지 않을 때의 마라톤의 시간은 맨하탄의 시간과 버몬트의 농촌의 시간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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