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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울림으로 남은 스팀타운 마라톤

 2010 10월10일 마라톤 009.jpg

결승점에 들어설 때는 텅 빈 무()의 상태다.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잡념이 사라지고 세상사 헛된 욕망이 지워진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의 자리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충만하게 채운다. 이렇게 채워진 감동의 여운은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10 10 10 , 일요일 아침 6 시 반, 먼동이 틀 무렵 조용하기만 하던 옛 광산 도시 스팀타운은 런닝복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초기, 세계 최고의 석탄 매장량을 자랑하는 펜실베니아는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1930 년대 까지만 해도 미동부에서 뉴욕 다음으로 번성하던 도시라고 한다. 기차에서 밤낮으로 스팀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서 스팀타운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서리가 약간 내려 쌀쌀했지만 파란 하늘과 곱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붉으스레 곱게 물들건 단풍만이 아니었다. 열기가 더해갈수록 선수들의 얼굴도 붉으스레 물들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당시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대포를 하고 발사하여 출발을 알리자. 마치 장구춤 무용단이 일제히 장구를 두드리듯이 사람들의 발은 장구채처럼 리듬을 타고 거대한 가을의 대지를 둥둥둥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대지의 가슴을 두 발로 장단에 맞춰 두드리며 울려오는 대지의 청아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 스르르르 명상에 빠지는 듯 하다. 대지의 소리는 어느덧 참나의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지구의 핵보다도 더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 정신이 집중된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 달려가는 길은 오랜 세월 헤어져 있던 그리운 님을 찾아가는 길보다도 감격스러운 길이다. 상실되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겠다는 것은 이제는 내 존재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상실되었던 자아를 찾아 생기를 불어넣어 스스로 빛나는 작은 촛불이고 싶다.

 2010 10월10일 마라톤 047.jpg

2,500 명의 출전 선수에, 3,3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 요소요소에서 울려 퍼지는 브라스 밴드의 연주,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열렬한 응원, 그리고 따뜻한 가을 햇살이 26.2 마일 거리에 가득 찼다.

전반 초반 내리막 경사가 아주 심했다. 날씨도 좋았고, 몸 상태도 좋았다. 달리는 속도도 좋았다. 문제는 시작 전에 먹은 인절미가 위에 부담을 주었다. 그래도 경쾌하게 잘 달렸다. 마일당 거의 7 30 초 대다. 아주 잘 달리다 10 마일 지점을 통과하면서 위기가 왔다.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기권이 생각났다. 앞으로 달려야 할 거리가 더 많이 남았는데 힘이 빠지니 절망감이 몰려왔다. 순간 얼마 전 자기 집은 깨끗이 도배를 하고 남의 영업장소인 모텔에서 남편과 동반자살한 행복전도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살을 거꾸로 쓰면 살자 라던 이의 자살과, 힘들다고 기권을 떠올린 내 못난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는 거야! 시간을 보니 마일당 7 30 초가 조금 넘는 수준, 속도를 조금 줄여도 아직 내 인생 최고 기록이 가는 하겠다. 속도를 조금 줄이고 마음을 가다듬어 달리니 다시 힘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반환점을 돌 때는 1 시간 40 ,  아직도 생애 최고의 기록이다.

후반에는 전번보다는 완만한 경사였다. 하지만 속도는 계속 일정하게 유지가 되었다. 15 마일부터는 옆으로 커다란 시냇물이 흐르는 낭만적인 산책로였다. 낙엽을 밟으면서도 멋진 질주는 계속되었다. 18 마일 지점부터는 낙엽과 나무를 잘게 썰어 깔아놓은 길이었다. 푹신푹신한 것이 감촉은 좋았지만 모래 위를 달리는 것처럼 힘이 들고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20 마일까지는 기록이 좋았다. 앞으로 마일당 8 분대에만 뛰어도 3 시간 24 분에서 28 분 안에 들어가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언덕이 계속 몇 개가 나오는데 너무 힘들었다.

 

시간은 3 시간 36 8 , 개인기록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난 후에는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한 울림이 있다. 육신의 깊숙한 곳과 가을 대지의 핵까지 서로 오고 가는 미묘한 진동이 있다. 그 진동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특별한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달리면서 온몸의 기운이 소진될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신비로운 생병수가 온몸에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법과 규범과 도덕에 걸려든 한 마리 나비가 참나의 꽃을 찾아 나플나플 날아가는 자유인이 되는 거다. 절망의 탈진 상태에서 더욱 밝아오는 생명의 빛은 마라토너들만 누리는 축복이다.

한계를 넘어선 언덕에 서면 비로서 내려다보이는 너무나 사랑스런 자신의 모습이 있다.

 2010 10월10일 마라톤 012.jpg

오늘 처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여 성공하신 정환, 백 성기씨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리도 대단하십니다. 60이 가까워도 마라톤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보스톤 퀄러파이하신 박현수씨도 축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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