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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 같은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2009.


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그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 간간히 ‘아, 그런 건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여름 냉장고에서 꺼내 뚜껑을 막 연 맥주처럼,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가득 느껴지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다.

에세이에 관한 하루키의 절대 강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소재이다 -누가 ‘모나미 볼펜’이나 ‘우동투어’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겠느냐는 말이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기 때문에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어떤 글이든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하나의 소재에 대해 제대로 정리한 글도 읽어보고 싶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하루키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글이다. 하루키를 압축해서 명함을 만든다면 ‘마라토너 소설가’라는 직함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 이런 요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책의 제목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내 주변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하는 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가 공감할 수 없어도 에세이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내용과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특유의 문체가 즐거움을 준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흠, 하루키로군’ 하고 생각되는 그의 일관적인 문체 때문인데, 이 문체엔 그를 처음 접한 사람도 긴장하지 않고 책을 읽게 하는 오묘함이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루키 특유의 가볍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어투로 글이 이어져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이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그 사람도 마라토너)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릿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 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한여름, 앞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이 기분은 하루키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인 것이다.

달리기와 함께 한 그의 오랜 기억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엔 살아가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빈말이라도 쉽다고 할 수 없고,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않는 마라톤을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현재를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 이는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
    saturn1218 2009.06.24 18:34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네요.
    한국에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그는 역시 유명한 작가임에 틀림 없습니다.  서울에 소재한 시립 도서관에서는
    그의 책이 많이 대출되는데, 플러싱 분관 같은 경우는 그렇치 않더군요. 또한 그의 책도 많치 않구요.
    좋은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 ?
    미제빤쓰 2009.06.24 19:49
    "한여름 냉장고에서 꺼내 뚜껑을 막 연 맥주처럼,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내일 숙제; 
      1. 퇴근하고서 서점에 가서 책 구입하기.
      2. 슈퍼에 들러 켄맥주 구입해서 냉장고에 넣어 놓기.
      3. 책 보면서 맥주 홀짝이다가 취해서 골아 떨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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