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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라비 영양덩어리 입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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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비를 몇 개씩 사다가 두고는 과일처럼 깎아 먹고는 했는데 오늘은 남편이 콜라비 깍두기를 만들어 보라고 해서 깍두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긴 콜라비가 무보다 단단해도 달큰하고 사각사각해서 깍두기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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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처럼 먹고는 합니다 달큰 사각사각 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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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콜라비의 껍질을 깎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습니다. 

"뭐해?" 
"콜라비 껍질 벗기고 있는 중야. 깍두기 담그려고." 
"나도 콜라비 사다가 깍두기나 담글까. 요즘 마트에서 사다 먹는 김치가 내 입엔 짜더라고. 내일 점심모임 있는 거 알지? 꼭 나와." 
  
그 친구네는 벌써 지난 초겨울에 담은 김장김치가 떨어졌나 봅니다. 친구는 입이 짧은 편입니다. 뭐든 조금씩 만들어 홀랑 먹고는 합니다. 김장도 다섯 포기를 했습니다. 그때 내가 '남편과 두 식구라 해도 그렇지 다섯 포긴 너무 적은 거 아냐' 하니까 그래도 김치찌개며 김치전까지 부쳐 먹으면서 얼마든지 겨울을 보낼 수 있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장담이 무색하게도 벌써 김치가 떨어진 것입니다. 요즘 겨우 내내 김치냉장고에서 익은 김장김치가 한 창 맛있습니다. 한창 맛있을 때 떨어지다니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친구는 밑반찬도 저장해 두지 않았습니다. 작년 여름입니다. 오이며 오이고추, 깻잎들을 잔뜩 사서 담은 핸드 카트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끌고 오다가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예쁜 노란 양산을 쓴 그 친구는 땀방울 하나 없는 깔끔한 얼굴로 바나나 한 송이가 달랑 들어있는 비닐 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내 꼴이 추해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먹고 싶을 때 조금씩 사다가 먹지 이 더위에 그 꼴이 뭐냐?" 
"오이지도 담고, 모두 밑반찬 거리라고." 
"난 오이지가 싫어, 어렸을 때 지겹게 먹어서." 

친구도 나도 가난했던 육이오 세대라 어렸을 때 오이지를 물리도록 먹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이지가 지겹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나는 오이지를 잘 먹습니다. 그러나 여름에 보다는 한 겨울에 더 많이 먹습니다. 흰눈이 펑펑 오는 날, 김치냉장고에 절여 둔 오이지를 몇 개 꺼내어 어슷썰기를 해서 적당히 물에 우려 면포 주머니에 넣어 묵직한 차돌로 눌러놓았다가 갖은 양념에 무치면 아주 맛있습니다. 별미입니다.  

요즘 우리 집 밥상에는 오이지무침뿐만이 아니라 진간장이 노랗게 배인 오이고추 장아찌와 깻잎 장아찌도 있습니다. 어제는 작년 가을에 말려 둔 무말랭이로 새콤달콤하게 장아찌를 만들었더니 남편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웠습니다.  

비타민C와 철분 듬뿍, 영양 덩어리 콜라비 

콜라비는 보라색 껍질에 양분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껍질은 딱딱합니다. 섬유질이 질긴데다가 두껍기까지 해서 먹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분이 아까워도 껍질을 두껍게 깎아내야 합니다. 

검색해 보니까 콜라비는 영양 덩어리입니다. 당도가 있어도 칼로리는 낮고 비타민C와 철분 칼슘 회분도 들어 있습니다. 고혈압을 낮춰주고 항암효과도 있고 식이섬유가 많아 장 건강에 그만이라고 합니다. 당도가 높아 그런지 무우는 생으로 몇 조각만 먹으면 속이 쓰린데 콜라비는 아무리 먹어도 속이 쓰리지를 않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웰빙 채소입니다.   

두 개를 깎고 나니까 손목이 시큰거려 집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깍두기며 무채를 큰 양푼 가득히 썰어도 손목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올해는 다릅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편을 돌아봅니다. 남편은 여전히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무슨 책인지 아주 푹 빠져서 읽고 있습니다. 도와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 둡니다. 나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할 때 남편이 부르면 짜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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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그럽습니다 보라색 껍질도 예쁘고 ---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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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하얀 무가 양푼에 가득해 졌습니다.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썬 다음에 콜라비 이파리도 잘게 썰어서 넣습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미리 만들어 둔 새우젓 양념을 붓고 가만가만 버무리는데 남편이 읽던 책을 놓고 슬슬 다가왔습니다. 싱그러운 새우젓 양념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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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먹음직 합니다 남편이 아주 잘 먹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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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식욕을 자극하지만 발그스름하게 물이 든 깍두기 빛깔이 얼마나 곱고 먹음직 해 보이는지를 모릅니다. 남편이 한 개를 집어 어적어적 먹더니 이어 또 한 개를 집어 먹습니다. 나도 한 개를 집어 먹습니다. 달큰 사각사각합니다. 

"거 맛있네, 익히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되겠는데." 
"그러게, 저녁부터 먹지 뭐.  

남편과 마주 보고 웃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아까 그 친구입니다. 

"밑반찬 좀 줘. 뭐든 좋아, 입맛이 없어서 그래.   
"밑반찬?" 

작년 여름에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먹고 싶을 때 조금씩 사다가 먹지 이 더위에 그 꼴이 뭐냐.' 

마음 같아선 '마트에 가 봐' 라고 하고 싶습니다. 친구가 그런 내 속을 들여다 본 듯이 말했습니다. 

"파는 것들은 아주 짜다고."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눈치 빠른 친구가 넉살 좋게 나왔습니다.  

"어이, 삼십 년 지기! 싫어?" 

'삼십 년 지기' 라는 말이 묘하게도 가슴을 때렸습니다. 나는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꼼짝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 오랜 세월을 한 동네에서 보냈고 또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젊었을 때는 많이 붙어 다녔습니다. 사군자도 배우러 다녔고 성당에서 활동도 같이 하고 걷기운동도 마트 장도 같이 보면서 수다도 얼마나 많이 떨었는지를 모릅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고 눈빛만 봐도 통하는 친구입니다. 

"내일 점심 모임 때 잊어먹지 말고 가지고 나와." 

꼭 맡겨 둔 것을 찾는 말투입니다. 그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갔습니다. 

"근데 넌 뭐 줄 건데?" 
"글쎄, 아, 시금치 줄께. 싸서 몇 단 산 게 시들거려서 데쳐 놨어." 

속이 조금 풀렸습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명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마음이 편치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 한 것도 같았습니다. 

콜라비 깍두기가 김치 통을 채우고도 꽤 많이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줘야겠습니다. 밑반찬과 깍두기를 주면 아마도 친구는 또 '역시 삼십년 지기는 달라' 하고 환하게 웃을 것입니다. 

  • profile
    김예왕 2014.03.12 09:55
    오늘의 요리강좌 잘배웠읍니다.
    23년 기다려야 30년 지기가 되니 ...혜경언니 안지도 7년쯤 되었으니 . 까짓것 ㅎㅎ 23년 기다려 보지요 .
    혜경언니 !! 기다릴테니 ...잊지마세요 ㅎㅎㅎ
    수고하셔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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