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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 마라톤 에피소드

지금은 마라톤을 300만에 이르는 인구가 대중적으로 즐기고 있지만, 불과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극소수의 선수들만 하는 운동이었다. 당시 경제적 수준에서는 서양처럼 체계적으로 선수를 육성하고 경기를 운영할 능력이 없어서 대표선수 선발전조차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스포츠 자체를 노동과 같은 것으로 여기던 시절, 당시의 마라톤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세계 최초의 마라톤 공식기록은 1908년 7월 미국의 존 헤이스가 세운 2시간 55분 18초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기록은 1927년 마봉옥이 세운 3시간 29분 37초다. 30분 이상의 기록차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라톤이 태동한 시기만 2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이후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빠르게 향상되어 1930년대 손기정, 1940년대 서윤복 등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가 배출됐다. 하지만 전반적인 대회 운영이나 선수 관리, 관련 산업은 1950~60년대까지도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1955년 경부역전마라톤대회 경기 모습

배고파서 기권… 완주만 해도 ‘입상권’
일제 치하에서 시작된 한국 마라톤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안쓰러운 장면들이 많이 연출됐다. 당시 전문 선수라고 해봐야 나름의 방식으로 달리기 연습을 해온 사람일 뿐 체계적인 몸 관리와 훈련을 한 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주를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기록보다는 완주에 성공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였다.
가뜩이나 어렵던 시절, 영양섭취가 부족한 선수들은 잘 달리다가도 픽픽 쓰러지곤 했다. 그렇다고 누가 응급처치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알아서 길가에 앉아 기다리면 작은 회수차가 와서 대회장으로 실어갔다. 100명이 뛰면 그중 80명은 중도 기권을 하는 형편이라 회수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반면 완주에 성공만 하면 기록이 좋지 않더라도 일단 입상권을 기대할 수 있었다.
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체크하며 뛰는 것도 불가능했다. 선수들은 부자들이나 차는 값비싼 손목시계를 살 돈이 없었다. 선두권 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두차량엔 시계가 붙어있지 않았고, 그저 길을 알려주는 역할만 했다. 그러니 선수들은 그저 감에 의존해서 무작정 열심히 뛰어야 했다. 반환점에 도착하면 코치가 불러주는 사간을 듣고는 다시 감에 의존해서 달리는 식이었다. 지금처럼 일정 거리마다 랩타임을 재면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코치에게 자전거가 있으면 따라가면서 여러 번 시간을 불러줄 수 있었다. 사실 마라톤 초창기에는 몇 등을 하느냐가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기록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프로의식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지방에서 열리는 소규모의 단축마라톤대회에서는 반환점에서 확인도장(코스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을 받고 나서 중간에 일정 거리를 차량이나 자전거로 달리는 반칙도 종종 일어났다. 요즘 같으면 선수자격을 박탈당할 만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런 것들이 1950년대까지 볼 수 있었던 마라톤대회 풍경이다.

1937년 남대문에서 열린 개성마라톤대회 입장식

줄자로 잰 코스서 급수대도 없이 뛰어
믿기 어렵겠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마라톤 코스에 급수대가 없었다. 물은 코치들이 중간에 건네주는 것을 받아먹어야 했다. 지금처럼 5km마다 시원한 물과 젖은 스펀지가 공급되고 각자의 입맛에 맞는 스페셜 드링크를 마실 수 있는 게 아니었다.시기적인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육상 선진국들도 형편이 비슷했다. 마라톤대회의 급수대 운영은 1960년대 들어 일본이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도로 사정도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풀코스 대회는 포장도로에서 열렸지만 지방에서 열리는 단축마라톤대회나 역전경주 등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을 달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신작로라 해봐야 자갈이 깔려 제대로 달리기 어려운 길이었다.
트랙경기도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시설이 좋았던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도 흙으로 덮인 500m 트랙이었는데, 비라도 오면 곧 진창으로 변해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었다. 요즘은 공설운동장이나 시민체육공원에서 흔히 이용할 수 있는 400m 공인규격 트랙도 1970년대 중반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오늘날 마라톤코스 계측은 세계육상연맹이 공인하는 존스카운터 방식(사이클 바퀴에 카운터를 부착)을 사용한다. 공인계측을 받을 여건이 허락지 되지 않더라도 GPS나 자전거용 거리계를 사용해서 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1970년 이전에는 선수들이 뛰는 레이스도 제대로 된 계측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육상선진국에서는 자동차를 이용해 계측을 했고, 보다 여건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는 100m 길이의 줄자를 이용해서 쟀다. 줄자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뒤 끝에 백묵으로 표시를 하고, 표시한 지점부터 다시 100m를 재는 식이었다. 거리 계측에는 주로 어린 육상선수들이 동원됐는데, 대회 전날 차량 통행이 적은 밤중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기록 계측도 10분의 1초까지 표시되는 스톱워치를 가지고 심판이 직접 계측하는 수기측정방식이었다. 이 방식이 마라톤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단거리에서는 종종 시비를 불렀다. 사람의 반사신경에 한계가 있다 보니 계측 오류도 생겼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일까지 있었다.
이후 1986년에 바퀴식 측정기가, 1996년에 존스카운터 측정방식이 도입되어 코스 실측이 보다 정확해졌고 기록 계측도 자동화되어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대회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1958년 경부역전마라톤대회 골인 모습

오히려 경기력을 방해했던 옷과 신발
세계적으로도 과학화된 스포츠용품이 부족했던 시절, 가뜩이나 일제의 탄압을 받고 있던 우리나라에는 스포츠용품이 전무했다. 마라톤 선수들은 면으로 만든 반바지에 면으로 된 러닝 셔츠를 입었다. 땀이 배출되지 않고 스며있어서 끈적거리고 답답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시합을 뛰고 나서 옷을 짜보면 스며있던 땀이 걸레 짤 때처럼 쏟아졌다.
장시간 달리는 마라톤에서는 속옷도 문제였다. 일반 속옷은 달릴 때 성기가 흔들려 불편하고 겨울에는 성기에 동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식 속옷 ‘훈도시’와 유사한 사뽀데(support의 일본식 발음)를 입었다. 얇고 신축성이 좋은 요즘 속옷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해서 달리다 보면 국부가 쓸리는 일이 많았다.
신발은 ‘포화(천으로 만든 신발)’라고 불리는 것을 신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노동을 할 때 작업화로 신는 ‘다비(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분리되는 것이 특징)’를 개조해서 만든 ‘마라톤 다비’를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이 신발은 일반 다비에 비해 창을 두껍게 만들기는 했지만 충격흡수 기능은 거의 없었다. 신발이나 양말이나 통기성이 거의 없어서 달리다 보면 신발 안에 땀이 고여 질척거렸다.
1945년 해방이 직후에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화 전문점 ‘대륙사’가 종로3가에 생기면서 운동선수들의 환영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 체제가 아니라 선수들의 주문을 받아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들었는데, 그야말로 ‘잘 나가는’ 선수들이나 한 켤레씩 사 신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죽 신발에 폐타이어로 밑창을 붙인 마라톤 전문 신발 ‘압슈즈’는 지금의 마라톤화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무겁고 충격흡수가 잘 안 됨은 물론, 길을 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함기용 처럼 국제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서양의 선진화된 마라톤 신발을 사 와서 아껴 신기도 했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당시의 함기용. 힘들게 뛰어들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경쟁자가 없어 마지막 4km를 걸었다.


중간에 걷고도 보스톤마라톤에서 우승?
앞서 본 내용에 대해 너무 우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부족했던 시절,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외국 유명 대회에서 쾌거를 거두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까지 마라톤 대회장 내빈석에서 볼 수 있었던 함기용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50년 제54회 보스턴마라톤에 송길윤, 최윤칠 등과 출전해 1위부터 3위까지를 휩쓸어버렸다. 함기용이 1위, 송길윤이 2위, 최윤칠이 3위였다. 그런데 함기용은 이 대회에서 마라톤사에 남을 에피소드를 남겼다.
초반부터 선두를 달린 그는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와 현격한 차이가 날 정도로 독주했다. 대개 30km 전후까지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요즘 플레이와는 영 딴판이었다. 물론 명백한 오버페이스였다. 한참을 달리다가 조금 지친다 싶어 거리를 확인해보니 이미 레이스 종반인 38km 지점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뒤처져있었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문득 경쟁자가 사라졌음을 안 함기용은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걷기 시작했다. 조금 쉬다가 뒤따르는 선수가 보이면 다시 힘을 내서 뛸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른 주자를 기다리며 걷다 보내 어느새 결승점에 다다르고 말았다. 무려 4km를 걷고도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기록은 2시간 32분 39초로 평소 기록보다 저조했지만 그가 골인하고 3분이 지나서야 2위 송길윤이 들어왔다. 이 믿기 힘든 에피소드는 보스턴마라톤의 역사에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글_김수석 기자 | 사진_러닝라이프 DB

  • profile
    apple 2011.01.05 18:17
    귀한 자료 잘 읽었읍니다.
    지금의 우리들은 풀풀 날리는 흙길 이 아닌 잘 포장 된 아스팔트 위 를 달리고,천 으로 만든 신이 아니며 가지각색 의 상표
    에 수십만원이 넘는 운동화 를 신 을수있는 이 시대에 태어난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수고 하셨읍니다.
    귀한자료 군요!. 
  • ?
    hyunsoo park 2011.01.05 21:32
    71년 에는 문교부에 높은 사람이 남보다 생각이 앞서, 한국의  marathon 중흥을 위하여 전국 고교 marathon 대회를
    처음 개최  했는데 우리 학교 에서는 (  깡?) 좋은우리반 학생 한명이 출전 신청 했고,  뛰러가기 전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은 그 친구한테 부탁  했읍니다.   걸어도 좋으니 완주는 하라고... ,      그 당시만 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시절 이라 전국 에서 모인 인원이 모두 27명 이었고,   그 친구는 도중에 포기했읍니다.

    72년에는서울운동장에서 100m와400m relay  뛴적이 있는데, 물론 당연히 예선 에서 탈락했지만...
    서울 운동장 이야기에 빠뜨리기 싫은 추억이라 한줄 적었는데, 적으면서 생각하니 그래서 아직도
    호랑이 담배 피던시절에 살고 있지 않나 싶읍니다...   당시 서울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이나 육상경기는
    모든 학생들의 꿈  이었지요.......
  • ?
    강명구 2011.01.06 08:28
    만감이 교차하는군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뛸 수 잇는 것은 축복인데 사람들은 축복을 거들떠도 안보네요.
    돈 몇 푼에는 아등바등하변서..
  • ?
    지현정 2011.01.06 09:14
    풍요속 빈곤 모 그런건가요? ㅎㅎㅎㅎ
    한국인의 남다른 의지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것 같습니다 ^^
    달림이들의 천국을 달리는 천사들의 모임~ 하하하하~ 조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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