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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마운틴 산악 50 마일 울트라 마라톤

 

5 월의 산속은 홍등가의 밤거리처럼 바람난 생물들이 주체할 수 없는
정염을 발산하고 있었다. 5 월은 살아 있는 생물들에게는 질풍노도의
계절이다. 새로운 생명을 이어나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미친 힘이 있다.
누가 그랬다. 꽃가루는 식물의 정자라고. 식물은 생명의 끊임없는 순환을
 위하여 꽃가루를 온 세상에 사정을 해버린다. 화류계 여인의 진한 향수
보다도 더 진한 꽃 향기와 함께. 난 이즈음이면 꽃가루 알러지에 심한
곤욕을 치르곤 한다. 새들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도 서로
유혹을 하며 지지배배 노래를 한다. 새벽 밤하늘의 별들도 염분이 난
것처럼 화사하게 반짝이며 서로를 희롱하는 듯 하다.

새벽 3 시 반에 뉴저지에서 권이주씨와 만나 출발하였다. 고맙게도
덕제씨가 새벽잠 설치며 나와 우리를 베어 마운틴 스테이트 팍에 태워다 주었다.

다섯 시 아직도 캄캄한 어둠 속에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약 200여 명의
선수들이 달려나갔다. 머리전등을 준비해 갔지만 약 3,4십 분이면 여명이
 밝아올 것 같아 그냔 출발하였다. 그냥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면 될듯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산은 여지없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돌무덤 오르막길을 어둠 속에서 뛰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이주씨가 시작한지 십여 분 만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셨다. 나도 자꾸 발목이
 삐끗 삐끗한다.

해발 200 피트 지점에서 해발 1400 피트 산 정상까지 돌무덤 길을 달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그러나 내가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은 이렇게까지 험할 줄 몰랐다.
 
마라톤 풀 코스는 지난번 로드 아일랜드 대회까지 11 번 완주를 하고 나니 뭔가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50 마일 울트라 마라톤이면 풀 코스 마라톤의 거의 두 배 거리지만 물을 마셔가며
 천천히 뛰면 충분히 완주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베어 마운틴이 산길이라도
경사가 더 심하겠지만 이렇게 돌무덤 등산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릴 줄 미처 몰랐다.
처음에 돌무덤 길을 달릴 때에도 곧 좋은 길이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길은
 더 험해져 갔다. 정확히 말하면 돌무덤 길보다 좋은 길은 있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때 조금 나았고, 징검다리를 건널 때 조금 좋았다. 또 산정상에서 바위 위를 달릴 때
 거의 포장 도로 수준으로 좋았다. 그러나 그거 정말 잠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햇살이 산중 호수에 튕겨져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져 왔다.
아기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갓 태어난 햇살과, 산 속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사람들은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불규칙한 돌무덤을 마치 날다람쥐처럼 잘도 뛰어간다.
호수 한 구석에서 천둥오리 한 마리가 선녀가 목욕을 하듯이 목욕을 한다. 나는 이 바람난
 숲 속을 달리면서 천둥오리가 물 위를 노니는 것을 보고 왜 야릇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숨이 목까지 차오고, 잠시만 방심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극기 마라톤을
하면서도 남자들은 이렇게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을 위하여 야릇한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 산 속을 달리면서   생식의 본능을 주제로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야릇한 즐거움을 맛본다. 몇 년 전 샌디 에고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낙하산을 절벽에
 걸렸을 때에도 나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그 야릇한 상상을 했다. 밑에는 누드 비치가 있었다.

첫 급수대는 3.9 마일 지점에 있었다. 아직 손에 들은 물병에는 물이 그대로 있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출발하였다. 그 다음 급수대가 8.6 마일 지점에 있었다. 아직도
손에 쥔 물병에는 물이 그대로 있었다. 은근한 산바람을 맞으며 산정상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기분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고통과 환희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등산 다닐 때 밥해먹던 산정상의 쉘터를 몇 개를 지나쳤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산 속에 호수와 연못, 늪 길과 외나무 다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13.9 마일 지점에 또 다시
급수대가 있었다. 여기서는 시장기를 느껴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몇 개 먹고, 물병에 물도
 다시 채워 넣고 다시 출발하였다.

아래로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도 계속 험한 바위산이 나온다.
 
물병에 든 물은 다 비워져 가고, 갈증이 나는데 다음 급수대가 영 나오질 않는다. 자꾸
뒷 사람이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아마 이 지점이 18 마일, 19 마일 지점쯤 된듯하다.
머리에 현기증이 나고 속도가 확 떨어진다. 간신히 20.7 마일 지점에 도착 했을 때 시계는
10
시 삼, 사십 분 정도였다.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흘렀고 기력이 많이 빠졌다.
 
여기서 일차 컷오프를 시켰고, 기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 분 정도 쉬고 일어나니
다음 급수대까지 7 마일은 더 달릴 것 같았다. 일단 출발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는
몸 상태가 좋았다. 내 뒤로는 아무도 따라오는 기척이 없었다. 앞에도 사람이 안 보인다.
길은 오렌지색 리본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홀로 오렌지색 리본을 따라가는 산 속의
 두 시간은 너무 길었다. 간혹 오렌지색 리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순간적으로 공포감까지도
 들었다. 7 마일 구간은 오로지 다람쥐와 산새들만이 유일한 길동무였다. 몸 상태가
좋아져서 열심히 달렸지만 두 시간 동안 아무도 지나치지 못하고 27 마일 급수대까지 갔다.
거기에는 넘어져서 얼굴을 험하게 다친 여자가 기권을 했고, 나와 한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남자가 발목이 겹질려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는 양말과 신발을 바꿔 신고 다시
힘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힘들겠지만 해지기 전까지 완주의 가능성이 조금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 코스가 전반보다 수월하다면
.

또 그렇게 산 속을 홀로 달렸다. 30 분쯤 달리니 앞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그러나 어차피 지나칠 인연이다. 처진 사람과 같이 동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에 권이주씨가 보인다. 반갑기도
했지만 오늘 출전한 둘이 다 실패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기도 했다.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서 완주를 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거기다 권이주씨는 여러 번 넘어져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신 것 같았다. 산악 마라톤 준비를 따로 안 한 것이 오늘의 실패 원인인 것 같다 그리고
권이주씨는. 100 마일 마라톤 이후에도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서 컨디션조절에 실패하셨고,
나도 바로 6 일 전에 풀 코스 마라톤을 뛴 것이 피로회복이 덜 되었다.

34.4 마일 지점에 들어오니 운영요원이 다가와 몸은 괜찮니? 하고 물어보더니, 안 좋은
뉴스를 전해야겠는데 시간상 그만 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도전의 실패를 알리는 말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결승점에 돌아왔다. 결승점이 있는 베어 마운틴 스테이트 팍은 봄맞이
상춘객들과 마라토너들이 어우러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North Face에서 주최하는
대회인데 운영을 매끄럽게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주메달이 없는 목이 허전하다.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

  • ?
    또리 2011.05.13 14:02
    눈물과웃음이 범벅이 되네요.난 뛰지도 않았는데,글 을 읽으면서 전해져오는 두려움,설레임,짜릿함,진한 벅찬감동까지,,,
    얼마나 무서웠을까?나 였으면 어땠을까?...
    대단한 도전 정신 높이 삽니다.감히 풀 11번 뛰고 이런 몹쓸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헉헉헉,,,,
    무모한 도전에는 존경하지 않습니다.형님 다시한번 포기 당하시고 돌아 오신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완주 하셨으면 지금쯤 회복 불가능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ㅎㅎㅎ.제발 우리 천천히 가자구요.풀 마라톤 다음에는 36마일짜리도 있고, 50마일 그냥 뛰는거 그런거 뛰자구요.산악 마라톤은 한동안 잊자구요.저도 한 때는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는데,형님 맛 보신걸로 충분 합니다.전 이대로 쭈 욱 길게 갈랍니다.형님 몸 건강하십시요.빠른시간내에 우리동네 센트럴 파크에서 시원하게 뛰자구요.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고생하셨습니다.
  • ?
    djey 2011.05.13 14:16
    목 둘레는 허전해도 목안에는 쐐주로 꽈아악 채웠잖 수....그 돌무덤 어디 안가고 그대로 있을테니...잘 준비해서 다음에 죽여 줍시다....
  • ?
    Ashley 2011.05.13 15:23
    정말 멋지세요 *^^* 훌륭합니다
    실패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네요 ^^
    도전하는 자만이 가슴뛰는 삶을 살수 있다죠~~
    도전하신 그 순간 성공하신거나 다름없다 생각합니다
    몸관리에 신경쓰시고 얼굴뵙고 이야기나눌 날을 고대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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