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가 나는 마라톤
우리들은 이른 새벽에 모여 10 명이 미니밴에 구겨져 올라탔다. 6 명이 정원인 마니밴에 10 명이 꾸겨
타고 맨하탄으로 향했다. 우리가 이렇게 난민처럼 꾸겨져 한 차에 타고 다니는 이유는 차 안에 풍겨지
는 사람의 향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치러지는 새해 첫 half 마라톤 대회에 4 명이 출전하는데 6 명의 응원단이 같이 탔다. 차 안
에서 피어나는 우리들의 이바구꽃 웃음꽃 향기가 진동한다.
내가 여러가지 스포츠를 즐기지만 마라톤만큼 건강에 좋은 운동은 없다. 그러나 진하게 풍기는 사람의
향기는 마라톤보다도 건강에 좋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얻는 행복감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상위에 있어야 한다.
사실 오늘, 동네 마라톤보다 조금 큰 대회에,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닌데 응원단을 대동하고 출전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커다란 호사이자 사치다. 이 한겨울, 따뜻한 인정의 사치를 맘껏 누리니 큰 힘이 난다.
크! 파워젤이 별거냐?
그간 기승을 부리던 추위도 한풀 꺾인 일요일 새벽 대회 출전을 위해 센츄럴팍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행렬이 분주하다. 우리들은 출발지점에 모여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신호를 기다렸다.
오늘은 목표를 1 시간 40 분으로 정했다. 상금이나 명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목표를 정해놓고, 그만큼 열심히 연습하고, 그만큼 실력이 향상되면 커다란 성취감을 얻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그러니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하여 매 대회마다 5 분에서 3~4 분씩 줄여나가
는 재미가 곶감 빼먹는 재미만큼 솔솔하다.
신호가 울리자 염기섭씨 표현대로 전쟁터로 향하는 군마들처럼 수천 명의 출전자들이 힘차게 뛰어나
갔다. 수많은 군마 중에 한 마리의 군마가 되어 ㅂㄹ판을 달리듯이 정신 없이 달려갔다.
첫 1 마일 표지는 왜 그리 안 나오는지!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5 분 남짓 뛰었다. 그러니 1 마일
은 아직도 멀었을 터! 1 마일도 안 뛰고 힘들기 시작하니 이거 어느 세월에 13 마일을 뛰지?
드디어 1 마일 표지를 통과하면서 시계를 보니 8 분 20 초, “오버페이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
었다. 2 마일을 통과할 때는 16 분 15 초, 이거 오버페이스만 아니면 오늘 무슨 일 내겠구나 하는 기대
가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계속 유지하면 오늘 목표달성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를 받아서 뛰는 달리기는 육신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
는 더욱 열심히 멋지게 달려 그들에게 건강의 기를 전해주고, 내가 회장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고
싶었듯이, 저 사람들로 하여금 내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고 싶은 욕망을 전해주는 거다. 나도 저
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거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렇게 달려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여주는 거다.
수천 명이 뿜어내는 열기는 그야말로 녹색 에너지가 되어 센츄럴팍의 온도를 올려놓아 주었다. 그들에
게서 배어 나오는 사람의 냄새가 향긋하게 나는 한겨울 주말 아침이다. 사람들의 땀냄새가 허브 향처
럼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