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마라톤을 위하여
“선배들이 가자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가는 거지 뭐, 한 시간이라도 더 자고 싶은데.”
우리가 센츄럴 팍에 도착했을 때는 5 시가 약간 넘은 시각,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단어에 “첫”자가 앞에 붙으면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거기엔 설렘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기대감, 긴장,꿈, 희망이 얽혀있다. 첫키스, 첫사랑, 첫경험,첫눈, 첫발자국,… 이렇게 아련하게 다가와서 어설프게 끝나곤 한다.
마라톤에 입문한지 일 년 만에 첫 풀 코스 마라톤으로 Maryland의 Annapolis에서 열리는 경기에 등록을 마쳤다. 사실 New Jersey의 Cape May 대회를 첫 대회로 일정을 잡았는데 권이주회장님 100 뻔째 마라톤 대회라 우리의 첫 대회로 의미가 클 것 같아 일정을 조정했다.
이렇게 일정을 잡아놓고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름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막상 턱없이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어제 토요일 새벽에 Alley Ponds Park의 눈 덮인 길을 15 마일 달리고, 오늘은 센츄럴 팍을 18 마일 달리기로 했다.
어두운 센츄럴 팍을 한 2 마일 남짓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유선생님이 달려오셨다. 회장님이 앞에 누군가 알아보고 오라고해서 먼저 뛰어오셨단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어두운 공원에 벌써 한 바퀴를 달리신 두 분이 있었다.
천천히 달리던 우리는 두 분의 합류로 그 분들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히
회장님, 유선생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쫓아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어제 아침에 뛰고서 컨디션 조절을 잘했나 보다. 40 세 이후의 마라토너는 열심히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난 오늘 영 초반부터 몸이 무겁더니, 두 바퀴 조금 더 뛰고는 나의 몸 안에 있는 자동 제어장치가 스톱을 명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아! 이 부끄러운 망신, 그러나 신체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것도 현명한 대처가 아닌가 싶다. 오래, 부상 없이 이 운동을 즐기려면.
내 몸의 자동 제어능력은 대단하다. 무리를 하면 금방 신호를 보내 더 큰 부상을 당하기 전에 제동을 건다.
사실 어제 새벽에 15 마일을 뛰고, 바로 일을 나갔다가, 또 저녁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테니스를 두 시간 치고, 잠 네 시간 자고 18 마일을 뛴다고 나왔으니..
지난 일 년간 마라톤을 뛰면서 나는 나에 대하여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인가? 스피드는, 지구력은, 끈기는, … 계속해서 나를 실험해보고 있다. 때론 내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힘과 스태미나가 넘쳤고. 때론 너무 나약하게 무너져 버리곤 했다.
그리하여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 채 나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내 자신을 아는 것은 전략을 짜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초반에 빨리 달려 경쟁자를 앞지르는 방법과, 중간에 스피드를 내거나, 마지막에 스피드를 올리는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이 내게 적당한 전략인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10km 대회에서 마일당 기록에 20 초를 더하여 달리는 방법이 가장 과학적이라는데 그것도 실험해 보아야 한다. 또 하나는 10 km 대회의 기록에 곱하기 4.625를 해서 풀 코스 완주의 목표로 잡으면 된다니 그것도 역시 연습을 통하여 실험을 해봐야 한다. 아마 이렇게 고른 페이스로 레이싱을 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이렇게 연습은 자신을 찾아내서 갈고 닦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꾸준한 연습을 통하여 무아의 지경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블랙 홀에 빠져드는 그런 기분으로 인생에 한 번은 그렇게 뛰고 싶다. 마치 신체를 벗어버린 듯이, 신이 들린 듯이, 나비가 날듯이 가볍게 마라톤을 뛰는 거다.
마라톤 풀 코스를 100 번이나 완주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번 대회는 100 번째 마라톤 완주와 첫 번째 마라톤 도전의 운명적인 만남인 것 같다. 그분은 100 번째 완주의 방점을 찍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실 것이고, 우리는 첫 번째에 코 꿰어 우리들의 마라톤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