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 비치 해돋이 달리기
수평선 위에는 담장처럼 일정한 높이의 구름이 깔려있었다.
학교 가기 싫은 어린아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구름 담장을 넘어오는 해는 한참을 꾸물거린다.
초겨울 차가운 대서양을 넘어 고개를 내미는 햇살은 더 이상 사춘기의 반항아적 뜨거운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고운 얼굴 같은 국화꽃 같았다.
철 지난 바닷가의 매서운 칼바람도 달림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지는 못했다. 삭막한 겨울 바다의 새벽에도 낚시꾼은 있었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옷깃은 잔뜩 여미어져 있었고 어깨는 한참이나 오므라져 있었다. 그러나 달림이들은 두터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에서 찐빵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듯 김이 나기 시작했다.
Johns Beach는 10 마일에 걸쳐 베이비 파우더처럼 고운 백사장이 뻗어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이 큰 해수욕장에 불과 2 마일짜리 Board Walk을 만들어 놓은 건 이 주립공원을 설계한 모세스의 큰 실수다. 그는 내가 단언하건대 달리기의 “달”자도 모르는 마라톤의 “마”자도 모르는 상식 이하의 사람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흑인들이 없는 백인들만의 아늑한 해수욕장을 만드는 쓸데없는 망상만이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6 번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달리기 코스는 서쪽으로 2 마일 뻗어있는 Board Walk 코스이었다. 끝까지 갔다 오면 4 마일, 오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물 대여섯 명이 나왔다.
모인 사람 중에 절반은 4 마일을 뛰고, 나머지는 8 마일을 뛰었다.
마룻바닥을 달리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뛸 때마다 쿵쿵쿵 울리는 널빤지 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와, 아주 작은 소리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4 중주 음악을 즉석에서 연주를 한다. 2 마일을 거의 다 뛰었을 때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내 그림자의 키는 10 m도 넘게 늘어졌고, 내 감동의 그림자는 그 열 배도 넘게 길게 가슴에 드리워졌다.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12 월 초 저무는 해의 해돋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고 초겨울 첫 추위의 매서움에도 마라톤을 빙자하여 스물 대여섯 명이 모여서 보드 웍을 달리는데, 아! 정말 아름다운 것은 달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마라톤으로 잘 다듬어진 조각 같은 몸매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여명이 밝아오는 바닷가를
달려가는 모습이 철새들의 군무보다도 아름다웠다. 오늘 여기 존스 비치를 달리는 사람들은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절대권력으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맞을 것이다.
여자나 남자나 아름다운 사람들은 상대방 이성의 이유 없는 미소를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심리학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이성 앞에서 지나치게 배려하고, 바보처럼 처신하고, 아주 유치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그건 내 집사람을 보면 확실하다.
권력은 한 번 잡으면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속성을 가졌나보다. 그것은 어머니의 “먹거리 권력”에서도 그렇다. 어머니는 아직도 통째로 주방권력을 며느리에게 평화적인 이양을 거부한다. 맛이 뭔가 부족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다.
아름다움이란 권력도 한 번 잡으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칼바람이 부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어머니 날 나으시고 성형외과 의사가 내 외모를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고 그저 끝없이 달리면서 얻은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그저 달리는 것이다.
어쩌면 “마라톤” 그 자체가 이 병들고 나약하며 허겁지겁 급하게 살아가는 사회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건강 불안증에 빠져 조금만 몸이 이상하면 의사에게 달려가서는 보채듯이 처방전을 얻어와, 아이들 책가방보다도 큰 약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밥공기보다도 더 가득히 끼니마다 약을 드시는 은퇴자들 대부분은 마라톤과 손을 잡으면 더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덤으로 메말라가는 메디케어 기금이 남아도는 획기적인 일이 생길 것이다.
게임기 앞에서 몸과 마음이 시들어 가는 우리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게도 활기찬 미래와 신선한 꿈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이 얼마나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지를 아는 현명한 판사라면 웬만한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새로운 범죄를 배워 나오는 교도소 대신 풀 코스 마라톤을 뛰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들은 풀 코스 마라톤을 뛴 날을 제 2의 생일로 생각하고 제 2의 인생을 꾸며갈 것이다.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달리면서 한껏 열린 심장에 담으면서 맞는 12 월 초의 아침은 특별했다. 2010 년은 내게 특별한 한 해였다. 봄에 풀 코스 마라톤을 뛰기 시작해서 첫 해에 7 번을 완주했고, 7 번 모두 내게 독특한 추억을 선사했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달리는 습관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마치 태양이 수평선 뒤에서 떠오르기 전 어둠의 세상에서 수평선 너머 고개를 내밀면 밝은 세상이 되듯이 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선명한 밝은 세상이 되었다.
마라톤을 나를 폭발적인 힘과 끝없는 스테미나를 갖춘 내인생의 절대권력자로 바꾸어 놓았다.
달리기가 건강하고 활기찬 사회를 만들 엄청난 수퍼 파워가 될 거란 나의 믿음,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의미가 있다는 나의 믿음이, 오늘 초겨울 칼바람이 부는 바닷가를 같이 달린 스물 대여섯 명과 함께 내년에는 더욱 더 커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