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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Amish) 공동체를 구경하고 나오니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로 들어갔다가 21세기로 나온 듯 하다.
어리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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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못 찍게해서 유투브에서 올렸는데 소리가 없다.
아미쉬는 흔히
단순한 생활방식, 수수한 복장,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를 거부하고
무저항주의로 사는 기독교 공동체로
알려져있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고, 세금도 없다.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도 없다.
병역의무도 거부한다.
"집에 거울도 없어요."
마차를 모는 가이드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면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네요?"
"아, 가끔
월마트에 가면 보겠지요."
거울을 보면 허영심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예배
죽고 사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라고 믿는 그들.
종교개혁 시대인 1693년 스위스의 야콥 암만이라는
재세례파(Anabaptists) 지도자를 따르던 사람들을 아미쉬라고 불렀는데,
18세기 초 미국 펜실바니아로 이민을 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미국에서 제일 큰 아미쉬 공동체다. 인구가 6만9천.
공용어는 펜실바니아 독일어 (Pennsylvania
Dutch)다.
영어는 학교에서 따로 배운다.
학교
아미쉬 학교는 원룸 교실인데, 8학년까지 밖에 없다.
8학년이면 생활에 필요한 기본 교육은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전원생활과
노동, 겸손을 덕목으로 친다.
교회
교회는 20-40 가구마다 한 개씩 있는데
16세가 넘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고
교인이 되면 결혼은 꼭 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고
교회가 이들의 생활규범을 정하고 지키도록 지도한다.
"이 집주인은 자식을 12명 낳았는데, 손자가 115명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이 이들 사명중의 하나다.
대가족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고 있다.
서너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까만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차의 짚단을 나른다.
맨발이다. 여름동안은 맨발로 다닌다고 했다.
중간중간 마차가 그들 집 앞에 세워주면
우리는 농산물이나 빵, 시럽, 바구니 등을 샀다.
잉글리시 타운 (외부, 그들은
외부사람을 '잉글리시'라고 부른다)의
건강식품점에 가면 아미쉬가 기른 농산물이나 축산물이 비싸다.
믿을 만한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와 고구마, 쿠키, 래스베리 쨈을 샀다.
일찍 가지 않으면 토마토나 낙농제품은 다 팔려 살수도 없다.
"해가 지면 그들은 무얼할까? TV도 없다는데..."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마도 등잔불 아래 모여
앉아 우리 얘기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이상하게 생긴 동양여자, 코는 납작하고 눈은 쪽 째지고...
서로, 나도 봤다, 나도 봤어,
하면서 웃고 얘기하겠지요?"
내 말에 모두 웃었다.
그러나,
이 조용한 아미쉬 공동체에 큰 시련이 닥친다.
2006년 10월
펜실바니아의 Nickel Mine 공동체 학교에
무차별 총격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영화화 한 "Amish Grace"는 다음번에..)
이미지는 구글과 위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