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마라톤 축제로 발칵 뒤집혔다.
1775 년 4 월 19 일, 영국군이 보스톤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스톤 시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하여 첫 전투를 벌인다. 메사추세츄 주와 메인 주는 이날을 페트리어트 데이라고 명하고 공휴일로 지정했다. 보스톤 마라톤은 패트리어트 데이 연휴의 꽃이 되었다.
1897 년 대회를 시작해서 올해까지 115 회째로, 보스톤 마라톤은 전통과 명예와 폭발적인 정열이 어우러진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마라톤 대회이다.
올해도 2만7천여 명의 마라톤 선수가 성지 순례하듯이 세계각국, 전 미국에서 몰려와 보스톤 마라톤 대회가 가져다 주는 기쁨과 환희에 빠져들었다. 마라톤 신자들은 마라톤이 내주신 끝없는 은혜와 축복에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보낸다.
대회 하루 전날 시청에서 열린 파스타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간증하듯이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13 년째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하신다는 L.A에서 오신 한인 여자분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47 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지금 83 세라는 워싱턴 주에서 오신 할머니는 아직도 5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신다. 조금은 거만하게 자기들끼리 파스타를 먹던 백인 청년들에게 흑맥주를 들어올리며 건배를 청하며 권이주씨를 가리키며95 일의 대륙횡단 완주 이야기를 들려주니 바로 무릎을 꿇는다. 마라톤을 뛰면서 암을 극복한 이야기, 마라톤을 시작한 지 9 년만에 160 회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사하라 사막 극한 마라톤을 하셨다는 늘 계량 한복을 입고 뛰시는 아주머니 이야기, 등등. 파스타와 흑매주 한 잔에 이어지는 마라톤 영웅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1947 년
출발지점인 보스톤 시 외곽의 작은 마을 합킨톤은 이렇게 일년에 한번 보스톤이 발칵 뒤집히는 지진의 진앙지가 된다.
호텔에서 아침 6 시에 일어나 미리 준비해간 찹쌀밥과 꼬리곰탕을 데워서 든든하게 먹고는 서울에서 오신 출전 선수와 가족이 세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합킨톤에 도착하니 8 시쯤 되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기온은 아주 적당했는데 바람이 18 마일에서 20 마일로 세계 불어서 기다리는 동안 무척 추웠다. 다행히 바람은 서풍이라 뛰는 동안에 뒤바람이라 한다.
보스톤 마라톤은 전체적으로 내리막이 많지만 악명 높은 Newton hills, 메사츄세츠 힐, 그리고 보스톤 칼리지 근처의 Heart break hills등이 있어 세계적으로 어려운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10 시 20 분 드디어 우리 2 진 그룹이 출발하였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요란해졌다. 울리는 발자국 소리, 날려보내는 함성 소리,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섞여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2만7천여 명의 선수와 60만 명의 응원단이 함께하는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26.2 마일의 길고 험한 고행의 여행길이 시작되었다. 오늘 내 기록이 3 시간 38 분이었으니 세 시간 남짓의 세상에서 가장 멀고 험난한 3 차원에서 4 차원의 여행이다. 그 시간 동안 겪은 희로애락은 지금껏 살아온 그 시간만큼 다양하고 깊게 가슴과 온몸으로 밀려온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희열이 있는가 하면, 좌절이 있고, 다시 용기가 생기고, 또 다시 어쩔 수 없는 나락에 빠진 사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다 보면 결승점의 환희를 맞볼 수 있다. 결승점의 환희는 선택 받은 자의 축복의 자리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구도자의 득도의 순간과 같다
처음 6 마일은 내리막길이어서 여기서 무리하면 마지막 상심의 언덕에서 고생한다는 훈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이 구간에서는 비탈길을 내려가는 자전거처럼 속도가 붙는다. “그래! 오늘 내친김에 사고 한 번 치르자.”하는 각오로 열심히 달렸다.
도로 주변에 나와 응원하는 주민들은 그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어떻게 응원을 하며 즐기며 스스로 마라톤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배운 사람들 같았다. 웨슬리 여대생들과 보스톤 칼리지 학생들도 그들의 선배의 선배로부터 이렇게 보스톤 마라톤을 자기들의 것으로 바꾸어놓는 방법을 배워서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보스톤 마라톤의 무용담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들고 서있는 고사라 손과, 웨슬리 여대생들과, 보스톤 칼리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빼먹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뛰면서 어린 고사리 손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여대생들과 키스하며 사진을 찍는라 형편없어진 자신의 기록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나는 뛰면서 진정 이 사람들이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명품 마라톤 대회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인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통과 명예와 폭발적인 정열이 만들어낸 최고급 마라톤 대회. 내 소장품 목록에는 명품이란 없다. 비록 4만5천명이 출전하고 2백만 명의 응원단이 나오는 뉴욕 마라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보스톤 마라톤은 최고의 마라톤으로 내 가슴에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6 마일을 지나고 12 마일쯤 웨슬리 대학까지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이제 언덕이 시작되었지만 중간지점까지 기록도 좋았고 아직도 힘든 줄 모르고 응원의 소리에 한껏 고양되어 힘차게 달렸다. 20 마일까지 그 유명한 언덕을 다 넘어왔는데 그 마지막 상심의 언덕이라 불리는 약 0.4 마일의 언덕 구간에서 갑자기 피로가 엄습한다. 상심의 언덕은 내게도 커다란 상심거리로 다가왔다. 완전히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에는 학생들의 고막을 찢을 듯 들려오는 함성도 현기증이 나게 했다. 기운이 빠지니 언덕을 넘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고색창연한 보스톤 칼리지가 먹물의 농담처럼 몽롱하게 보인다. 이제 마지막 6 마일은 완만한 내리막길인데도 속도가 붙질 않는다. 사력을 다해서 달려보았지만 반 마일도 못 넘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스톤 다운 타운의 6 마일 길의 구름처럼 모여든 응원단들 사이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결승점에 발을 찍는 순간 3 차원의 세계에서 4 차원의 세계로 떠났던 기나긴 순례 여정은 끝났다. 달리기 시작해서 몸이 뜨거워지면서 온 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다른 세계로 여행은 시작된다. 영혼과 육신이 고통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세계이다.
보스톤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함성도 잦아들었지만 마라톤은 인류에게 하나의 커다란 문화유산으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