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 A Trail Marathon 참가기:March 4(sun)

by saturn1218 posted Mar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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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올해 처음 뛰게 되는 마라톤이었다. 뛸때 마다, 긴장되고, 도망가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출발 토요일 까지도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참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Annapolis도시를  구경하지 못하면 어쩐지 후회를 할것 같았다. 나는 대회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게 된것일까?  나는 3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소도시Race  좋은 점을 배우게 되었으며, 또한 Runner’s 시간 ,경비, 그리고 여명 느낄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감 회복 이라 있다.

   작은 도시에서만 느낄 있는 인간적인 면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있었다. 미국의 어느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Maryland라는 뜻은 영국의 Mary 여왕의 이름에서 연유가  되었다고 들었다. 조그마한 타운에서 개최하는 Race에서 유리한 첫번째가 많은 상을 획득할 있다는 것이다. 17명이 참가하여 8명이 상을 받게 되었다.  상패란 열심히 뛰라는 무언의 상징이 아닌가. Annapolis에는 United States Naval Academy 소재하고 있다. 학교의 마라톤 클럽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여 마라톤에 신선함을 부여해 주면서, 또한 건강을 다질 있었다. 또한 Ben Moory라는 사람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퇴직하고 1979 marathon training program 창설하고, 이지역의  마라톤의 대부로써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Trail 자취를 따라 뛰다 보니 과거의 철길을 있었으며, 옛날 차량이 없었을때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였음을 있었다. 세월이 바뀌면서 철로는 필요없었으며, 지역사람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자전거길과  하이킹 코스를 마련하여 시민들의 즐거움과 사색을 있는 곳으로 탈바꿈되었다.  이곳은 마치 차파콰이와 아주 흡사한 trail 이었다.

Runners’s 시간,경비의 절감과 새벽의 여명을 만끽할 있었다. 이른 새벽  2 플러싱 한양마트 앞에서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Annapolis 향하였다.  마라톤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락없는 미치광이에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뛴다 말인가?  전날 저녁에 일찍  잠을 청하여도, 나의 life style 때문에 제대로 잠을 없는 상태에서 26.2마일을 뛰어야 한다는 것은 정신나간 사람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미쳐서 날뛴다고  하지만  런너들의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있을까 말이다. 예를 들면 하루 호텔에서 경우 $ 50이상 사용해야 하며,  대회 출발할 경우, 자신들의 일을 쉬어야 하며, 비용 또한 무시할 없다. 멎진것은  어렴픗이 떠오르는 여명을 보면서 미국 산업의 젖줄을  대형 차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런 기분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마치 국가대표 선수단의 대형차처럼 이동을 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자신감 갖을 있었다.    말하자면,  이번 마라톤을 하고 나서 나에게 새로운 꿈과 삶에 무엇이든 있을 같은 용기가 생겼다.  나는 완주 시간대가  5-6시간에서 맴돌았다.  완주 후에 느끼는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주며,  돌아 가는자동차 에서는 심하게 피곤하였고, 다음 날에도 걸음을 걷는데  힘이 들었던 경우도 많았다.  보다 뛰는 사람들의  수많은 땀방울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해  보았다.  B & A  Trail Marathon 통하여   하나를 배운것은 3시간대에  달리는 사람들을 그냥  부러워 하였지, 그들의 고통과  노력은 안중에 없었던, 자신을 반성할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Gym,  ,  그리고 공원 에서 수없이 흘린  값진 땀방울을 염두에 두지 않아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이번 마라톤을 통해서 멀리에 있는 Boston 그림자를   자력의 힘으로  꿈꾸어   있다는 것이다.   더욱  기쁜것은 자신도 노력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다.  또한 삶을 되돌아 보면,  청학의 꿈을 품고 JFK 공항에 내렸건만, 그동안 나는 패배자였었다. 수업시간에   젊은 아이들 속에서  따라 가지 못하여, 겪는  수많은  좌절감,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자신을 보면서 눈물을 삼킨적이 두번이 아니었다. 다시는” St. John ‘s University 뒤도 돌아볼것이다  라고 지난해 다짐에 다짐을 하였던 나였었다.  그래  이젠 어떤  거친 폭풍이 몰아져도 , 집채 만한 스나미가 몰려와도, 나는  “ I can do everything”  외쳐보았다.   Library Information Science  아닌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음 학기에는 학교로 다시 되돌아 갈것이다.